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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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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4 11:01:56, Hit : 431, Rec.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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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8,930만 2,400 초]
내 나이 40 살에 늦둥이 막내아들을 얻었다. 내가 70살이 되어야 막내가 비로소 30살이 되는 것이니 분명히 ‘늦둥이’다. 그 늦둥이 아들이, 벌써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취업해서 어느 종합대학교의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니 세월이 참으로 느린 듯 빠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식을 낳아 기르다 보면 그 과정에서 정말로 하늘이 아득해지고 가슴 철렁한 순간들이 몇 번씩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 늦둥이 막내를 기르면서도 딱 두 번 그런 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아이가 세 살 때, 휴일에 교우 몇 분과 격포 채석강에 숨 돌리러 나간 날 동행한 교인 한 분과 잠시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 그 수많은 관광객 틈에서 그만 아이를 잃어버렸던 일이다. 세살박이 어린 아이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알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 거의 넋이 나간 채로 붐비는 관광객들 틈새와 임시파출소를 헤매고 다니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무려 네 시간이나 지나 어둑어둑한 초저녁에야 간신히 아들을 다시 찾았다(꿈처럼 되찾은 어린 막내아들한테 들어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세살배기 아들은, 사람들 틈에서 호기심에 여기저기 잠시 혼자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엄마 아빠가 안 보이자, ‘엄마 아빠가 틀림없이 거기로 오리라’는 생각으로, 우리 일행이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산 중턱에 세워두었던 우리 차량 옆으로 기어 올라가서 강아지풀 몇 가닥 꺾어 손에 들고 엄마 아빠가 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한다. 전혀 울지도 않고).
두 번째는, 우리 막내아들이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무릎을 많이 다쳐 치료 차 동네병원에 데리고 갔던 일이다. X레이 사진을 들여다 본 원장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 아들의 “무릎뼈에 ‘골종양’이 있다”고 친히 ‘전원서’까지 써주며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 정밀검사를 받으라” 했다. 우리 막내가 골종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눈 앞에 죽음의 그림자가 오락가락했다. 극심한 절망감으로 한나절 남짓 고민 끝에, 물에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분야의 이름 있는 의사께 맡겨 재검사를 한 결과 뜻밖에도 한심한 오진(誤診)이었음이 결국 밝혀졌다(오진한 신경외과 원장을 당장 찾아가 귀싸대기라도 한 대 야물게 올려붙이고 싶었지만, 어린 나이에 죽을 뻔한 내 자식이 골종양이 아니어서 다시 살아난 사실에 그냥 그냥 감사하며 꾹 눌러 참았다). 딱 두 차례, 불과 서너 시간, 불과 한나절의 마음고생이었지만 수십 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그 때 일로 험한 악몽(惡夢)에 가위눌리는 밤이 꽤 많다. 잠시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자식, 잠시, 죽음에 이르는 몹쓸 병인 줄 알고 한없이 절망했다가 간신히 다시 희망을 되찾아 환하게 안도했던 딱 한 나절의 마음고생만으로도, 애비인 나는 평생을 걸핏하면 악몽에 시달리며 이토록 힘들게 산다. 그 때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참으로 무서운 마음의 상처가 내 가슴에 아주 깊게 생겨 버렸던 것이다.
72 개월, 2191일, 52,584 시간, 3,155,040 분, 189,302,400 초, 이것은 2014년 이후 오늘까지 6년 세월을 단위를 달리하여 계산해 본 수치다. 6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다 키운 고등하교 2학년 자식들을 진도 앞바다 차가운 물속에서 잃어버린 부모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무려 1억 9천만 초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이젠 그 마음의 상처가 무덤덤해졌을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니까 세월 따라 그 아픈 기억이 이제는 그럭저럭 어느 정도 희미해졌을까. 그래서, 인두껍을 쓴, 개만도 못한 자(놈 자)들이 주둥이로 똥 싸듯 내뱉는 말처럼, 그 부모들이 그저 “단순한 교통사고”로 죽은 자식들의 “시체 장사꾼”이고, 그러기에 “이제는 제발 세월호 타령 그만 좀 하라”고 매몰차게 책망해야만 하는 것일까. 자식 잃은 슬픔에 제발 사고의 원인이라도 얼른 밝혀 달라며 피를 토하듯 금식하는 유가족들 옆에서 폭식 행사나 하는 정말 개만도 못한 젊은 일베 쓰레기들을 나와 똑같은 사람, 우리 국가 시민사회의 소중한 한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사람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사람이 자식 잃은 남의 아픔에 얼마나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 당시 박근혜 대통령(사실상 최순실의 따까리)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 지도층에 얼마나 악마같은 자들(적폐세력)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1억 9천만 초, 아니 앞으로 그 부모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수백억 초의 시간이 더 흐른다고 한들, 자식 잃은 그 아픔이 어떻게 가실 수 있을까. 더더군다나 6년이라는 꽤 긴 시간, 옛날 내가 젊었을 때 ‘3년 군대 생활’을 하던 시절로 얘기하더라도 한 집안의 큰아들이 군대 제대하고 이어서 둘째까지도 군대에 너끈히 다녀왔을 시간, 군복무 기간이 좀 짧아진 요즘으로 말하더라도 첫째부터 셋째 아들까지 줄줄이 군대를 제대하고 왔음직한 그 시간이 뭉텅이로 무심하게 흘렀는데, 오늘까지 그 무지막지한 사고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진 것이 하나라도 있으며, 그 책임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제대로 받기는 했는가.
얼마 전, 어느 목회자 모임에 마지못해 나갔더니 어느 싸가지 없는 젊은 목사(?)가 내 앞가슴에 붙은 노란 세월호 뱃지를 보며 “아직도 그걸 차고 다니냐”며 빈정거리듯 시비를 걸어왔다. (내가 인격 수양이 덜 된 탓에) 순간 치솟는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그 목사란 자(놈 자)의 뒤를 따라가 마당 한쪽 구석에 불러 세워 놓고 따지듯이 물었다.
“어이 아무개 목사님(더럽지만, 인생이 불쌍해서 그래도 존대는 해줬다),
당신 자식이 죽었어도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내 눈에 일렁이는 차가운 분노의 눈빛을 알아채고는(내가 살벌한 공수특전단에서 장교 생활한 것을 아주 잘 아는 자다), 겨울 밤 등잔불 아래 까발려진 골마리 속 이가 도망치듯 슬금슬금 피해 도망가 버렸다. 아무리 목사, 장로 딱지를 붙였어도 사람의 아픔에 전혀 공감할 줄 모르는 그런 자(놈 자)들을, 나는 기독교인으로 보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뭔가, 그런 자들은 허우대가 아무리 그럴 듯해도 아예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내가 믿고 따르는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친히 내 곁에 오셔서 늘 함께하시며 나처럼 추악한 죄인을 위해 대신 죽어 주셨다는 것을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꿈에 부풀어 모처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수백 명이 여행은 커녕 아예 그 부모의 품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자식 잃은 그 슬픔과 서러움이, 어찌 인간의 몇 마디 위로의 말로 달래질 수 있겠는가. 따뜻이 위로를 해줘도 그 상처를 싸매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텐데, 그 아픈 상처에, 개 짖는 소리만도 못한 악담으로 소금까지 뿌려 가며 쇠수세미로 상처를 박박 긁어대듯 하는 자들을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이 세상에 떠도는 온갖 위로의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죄다 모아서 유가족들에게 들려준들 자식 잃은 부모에게 그게 무에 위로가 되겠는가. 그냥, 그들 곁에 말없이 함께 있어주고, 그들이 울 때 그냥 끌어안고 함께 조용히 울어주는 것 외에 사람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노력해서 어떻게든 사고의 원인을 낱낱이 밝혀 제2의 세월호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원통하게 삶을 마감한 아이들(애지중지 다 키운 내 자식이 그만 그 차가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해 보라)과 그 참혹한 일로 한 순간에 삶이 망가져 버린 그 부모들에게 사람인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작은 위로 아니겠는가. 내 늦둥이 막내아들이 어렸을 적, 가슴 철렁하고 천지가 다 무너진 듯 참으로 아득했던 그 상처는 솔직히 세월호 유가족들의 영원한 아픔에 비하면 아예 상처랄 것도 없는 아주 하찮은(천만 다행으로 다 잘 해결되었으니까) 기억일 뿐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그 일로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악몽을 꾸는데, 유가족들의 상처는 1억 9천만 초의 시간이 흘렀어도, 아니 앞으로 수백억 초의 시간이 더 흘러도 늘 2014년 4월 16일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 아닌가. 자식은 부모의 가슴에 묻는 것이고, 자식이 죽는 순간 그 부모 역시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저주스런 목숨으로 여길 만한 일이어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단원고 학부모 중 몇몇 분은 지난 6년 동안 한없이 아파하다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꿈에도 그리운 자식의 뒤를 서둘러 따라가고 말았다).
명색이 사진가로서 해마다 4월이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는 사진을 한 장씩 찍으려 애썼다. 올해는 전주 향교 뜰의 수선화를 소재로 유족들을 위로하는 사진을 열심히 만들었다. 청색은 꽃같은 어린 생명들을 허겁지겁 받아들인 차가운 바다, 노란색은 희생된 이들이 나비로, 하늘의 별로 부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만들었다. 수선화의 꽃말은 ‘조건 없는 사랑’, ‘부활’이라 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부모들의 조건 없는 사랑으로, 희생된 여러 아이들이 멋진 하늘 나비로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한테 있다. 이 작은 사진 한 장이 유족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의 손짓이라도 되면 정말 좋겠다. 이 사진을 보며 그 분들이, 이 세상에 자기들만 혼자 있는 것이 결코 아니고, 늘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이들이 곳곳에 아직 많이 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시면, 그래서 어렵더라도 조금이나마 억지 새 힘이라도 내실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단원고 그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교 교직원으로 취직하여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막내아들처럼, 어엿한 직장인으로 부모들 앞에 아주 자랑스런 자식으로 예쁘고 듬직하게 서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로 할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을 그분들 마음에 한없이 부어주시기를 간구할 뿐이다. 아이고 하나님…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신약성경 로마서 12:15)
두 번째 사진:
이광우 사진집 [그나라](예영커뮤니케이션, 2019), p.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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