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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평) 김기정 작, <어느 어머니의 외출>
이광우  2013-10-03 19:01:45, Hit : 2,344, Rec. :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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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묵상사진]

당선작/ 김기정 작, <어느 어머니의 외출>

흘러간 시간의 짙은 기억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과거는 그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처럼 우리들의 기억 속에 매우 또렷하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그 기억 또는 추억이라는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이 실제 현실로 일어나고 있던 바로 그 때보다 더 분명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날마다 새롭게 우리의 가슴을 휘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기정 사진가의 작품 <어느 어머니의 외출>을 보는 순간 과거와 현재까지를(어쩌면 미래까지도) 잇는 시간과 세월의 굵은 동앗줄을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을 매우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 삶의 한 부분을 따스하게 공유한 사람만이 잡아낼 수 있는 매우 뜻 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풍경사진도 피사계와의 오랜 교감 끝에 출중한 작품이 나오듯이 인물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사진가가 지켜야할 윤리 가운데 '남의 가난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길거리에 버려진 삶, 예컨대 노숙자의 헝클어진 삶을 도둑질하듯 찍어(실제로 도촬이고 엄연한 초상권 침해다) 퍽 그럴싸한 제목을 달아 함부로 내놓는 일이 흔한 세상에서 김기정 작가의 이 작품은 사진가의 윤리라는 관점에서도 참으로 본보기가 될 만한 참 좋은 작품이다. 거울 앞에 앉아 가슴 속에 오롯이 살아있는 소녀의 감성으로 얼굴을 매만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참으로 따스한 애정으로 보듬는 매우 한국적인 감성의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점에서 그러기에 이 작품은 세계적인 사진이다. 입에 발린 소리를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주인공인 할머니의 허락 없이는 삶의 가장 깊은 공간인 안방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설 수 없다는 점에서 작가와 주인공 할머니 사이의 삶의 깊은 나눔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어느듯 늙어 주름살이 깊이 패어버린 자신의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 매만지는 할머니의 주름져 애잔한 손길을 보는 순간 러시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의료봉사단을 따라 가서 일주일 동안 현지동포인 고려인들과 러시아 사람들의 장수사진 가족사진을 찍어서 액자를 만들어 주던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거기서도 김기정 작가의 사진 속 할머니와 같은 몸짓을 보이는 할머니들을 몇 분 뵈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다 늙은 얼굴 뭐하러 찍느냐"고 겉으로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이라도 예쁘게 찍히려고 머릿결을 본능적으로 매만지는, 다 늙은 육체 속에 뜻밖에도 고이 간직되어 있던 어쩔 수 없는 '여인의 마음'을 읽어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몸이 늙는다고 마음까지 늙을까? 몸이 늙는다고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마음 속 소소한 욕망까지도 사라지는 것일까? 박근혜 정부의 '노인기초연금 공약 파기' 문제로 떠들썩한 요즈음 새롭게 부각되는 노인 문제라는 우리 현실의 화두와도 이 작품은 그 뿌리가 깊이 맞닿아 있는 듯하여 더더욱 반갑기만 하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작품 속 할머니와 작가와의 관계가 어떤지 꽤 오래 생각해 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작가의 모친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친척 또는 친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 관계에 대한 추론을 끊임없이 계속하도록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의 흡인력은 만만치 않다. 좋은 작품이 갖춰야할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독자를 붙들어 매는 이러한 힘이다. 세상 어디에나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명암 대비는 일반적인 의미의 명암 대비와는 또 다른 깊은 호소력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칠흑같은 어둠은 아니지만 창밖의 빛이 비쳐드는 적당히 어두운 방안의 풍경과 창문 밖 밝은 빛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바깥 세상을 향한 '소녀같은 오랜 설렘'이 참 은은하게 엮여 있다. 거울 속 할머니의 얼굴과 손에 초점을 맞추고 주인공 할머니의 약간은 굽어보이는 등을 화면 왼쪽에 적절히 배치하여 프레임으로 활용하는 지혜는 작가의 공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주인공 할머니의 손모양을 포착하는 지혜는 정말 탁월하다. 손바닥을 자신의 얼굴에 대고 쓰다듬는 듯한 동작은 그 자체가 자신의 늙은 얼굴을 매만지는 모습으로 읽힐 수도 있고, 젊고 탱탱했던 시절의 피부를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깊에 패여버린 주름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감춰보고 싶은 여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할머니의 표정과 입 모양, 그리고 할머니의 손이 닿아 있는 얼굴 오른쪽이 다소 부어 있는 듯한 느낌에서 혹시 몸 어딘가가 아픈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짐작을 해본다. 아무튼 초첨이 모아진 이 할머니의 손동작과 손 모양 하나가 이 작품에 무한한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할머니가 어디로 외출하려고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한두 번쯤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우리 일상과 공통분모를 확고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사진을 보는 모든 이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든다. 거울 속에 비친 할머니의 얼굴과 프레임으로 활용된 할머니의 굽어보이는 등이 대조 되어 할머니의 현실적 삶을 앞뒤로 폭넓게 살피고 있는 것과 동시에 거울이라는 현실의 앨범에 비친 할머니의 모습과 지난 날 오늘보다는 조금 더 젊었을 적 한복 곱게 챙겨 입고(아마 사진을 찍기 위해 동네 미장원도 다녀왔을 테고 나름대로 제일 이뻐보이는 입술 연지도 짙게 찍어 바르고) 찍은 사진 액자의 대비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화면 왼쪽에서부터 할머니의 허연 머리와 굽은 등 그리고 거울 속 할머니의 손과 주름진 얼굴, 젊은 시절 곱게 차려 입고 카메라 앞에서 반듯하게 자세잡고 찍은 모습들이 연쇄 고리를 형성하면서 독자의 시선을 끊임없이 작품 속에서 머물게 한다. 허옇게 서리 앉은 머릿결과 액자속 젊은 시절의 검은 머릿결의 대비, 그리고 할머니의 오늘 팔을 타고 오른 손끝이 은근히 가리키고 있는 액자, 이런 다양한 소재를 마치 잘 꿴 구슬 목걸이처럼 한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붙들어 두고 작품 속 인물의 삶을 함께 추억하며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이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다.    

화면 속 거울을 지향하는 카메라의 각도 때문이지만 할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액자틀의 약간 왜곡된 모습 그리고 일종의 기준선이라할 수 있는 창틀의 수평선에 비해 많이 기울어 보이는 탁자를 통해 기울어가는 인생의 한 단면을 대비시켜 할머니가 안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작가가 그려내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화면 왼쪽 상단에 있는 생활도구와 할머니가 앉아 있는 이 책상 외에는 별다른 삶의 도구가 없이 단촐해 보이는 점에서도 할머니의 삶이 그다지 녹록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차분하게 잘 정리된 할머니의 일상이 인생의 중후한 품격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영원한 외출을 준비하며

외출하고 돌아오고 다시 외출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황혼이 찾아온다. 그 길 끝에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외출을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우리 모두 다 맞이하게 된다. 세월의 깊이가 깊을수록 바로 그 마지막 외출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 있음을 우리는 안다. 바로 그 때, 거울에 비춰본 내 모습이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또 그 분 앞에 설 때 내 삶의 어떤 흔적을 매만진 다음 다소곳이 머리 숙이며 나아가야할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김기정 작가의 이 사진은 보다 더 깊고 차분하고 정직한 사색을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에 등장하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지나온 삶의 여정을 조감하는 40대 한국 여인보다 훨씬 더 지긋해진 삶의 깊이와 영혼의 깊은 사색이 이 작품에는 무척 잘 무르녹아 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김기정 작가의 이 사진은 참으로 귀한 모범이 된다.  

잠시 짬을 내어 급히 쓴 이 사진평이 행여 김기정 작가의 좋은 사진에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몹시 조심스럽다. 아무튼 참 좋은 작품으로 깊은 감동을 나눠 주신 김기정 작가께 축하와 함께 고마움을 표하며, 곧 열릴 김기정 작가의 사진전도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우리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soli Deo gloria~~~

2013. 10. 3.

사진전문위원
이광우

* 한국기독사진가협회(KCPA) Weekly photo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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